현장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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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문화예술교육사 이야기: 욕심부리지마, 예술교육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1-02 17:14
조회
311

작성 이의인_2022 양천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사

학부생 시절 현대무용의 권위자 미나유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첫 수업 날, 현대무용 테크닉이나 마사그라함 순서를 나가실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즉흥 움직임 수업이었다. 또 한 가지 의아했던 것은 교수님 수업만 끝나면 옷이 다 젖어서 나오는 대학원 선생님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첫날부터 죽도록 춤만 추게 하실 줄 알고 땀이 날 정도로 몸을 풀고 있엇는데, 일단 앉혀놓고 이런저런 대화부터 시작하는게 아닌가.  심지어 대화에서 파생된 텍스트, 감정, 목소리 등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한 주간 있었던 일들이나 당시 사회적 이슈 거리 등까지도 그날 수업의 안무 주제로 만들어 내는 분이셨다. 그렇게 매주 어떤 주제를 던져주실지 몰라 긴장 속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다 보니, 수업을 거듭할수록 점점 움직임의 이유와 목적은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척하는 동작, 잘하는 동작,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잘 움직여보이는 동작들을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에 꾀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을 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추려고 하지 말고, 모르겠으면 잠시 멈춰. 그리고 앞을 봐"


이 한마디를 위해 서두가 길었는데, 예술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재미있어 보이는 콘텐츠, 악기 하나 다룰 줄 아는 정도, 그림 하나 그려내는 정도는 배울 수 있게 해준다고 접근하는 콘텐츠가 되는 순간, 예술교육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남는 것은 화려한 서류들 뿐이다. 기술적인 부분을 습득하고자 예술을 찾는다면, 차라리 문화원 강의나 전공반 학원 수업을 듣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교육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내면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이다. 멈추고, 정확히 보고, 인지하여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스스로 체득하고 부족함을 채울 수 있게 하는것. 이것이 문화예술교육사의 역할이자, 내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사 현장역량강화 사업'의 핵심이다.

 

<4회차 그림자 움직임 놀이: 고래 뱃속에서의 댄스>

내가 생각하는 예술교육은 '마법열쇠'이다. 나와 너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도 변하고, 놀이로도 변하는 모양이 자꾸 바뀌는 열쇠.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가능하게 만들고, 긍정적인 영감을 불어 넣어 우리 삶을 자꾸 재미있게 연결지켜주는 마법열쇠라고 생각한다.

 

<2회차 바디퍼커션: 길에서 만난 소리>

현장 역량강화는 무엇이 시켜주는가

행정업무가 처음인 나같은 사람에게는 행정업무에서 기본적인 요소인 기안문이나 공문, 지출결의서 등을 작성하는 것이 낯설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아르떼')에서 온라인 교육을 들을 수 있도록 제공해주었음에도, 보고 또 보고, 아무리 꼼꼼히 검토해도 실수가 자주 발견되어 늘 어렵고 미션수행처럼 여겨지곤 한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현장 역량강화는 현장이 시켜준다. 현장에서 만나는 대상들과 그 대상자를 통해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이 나의 역량을 강화시켜준다. 처음 우리동네 양티스트를 기획할 때에는 그저 막막했다. 양천구 지도를 위해서 바라보면 강아지 모양이라는 것. 그린 존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기에 정원 도시라는 특징이 있다는 것 정도 외에는 특별히 와닿는 요소가 없었다. '색깔 없는 도시 양천'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니, 이 지역을 문화예술로  색칠하자는 생각 말고는 도통 떠오르는 소재가 없었다. 나름의 이유와 그럴싸한 명분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는 욕심에 나도 모르게 본질은 접어두고, 화려한 서류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이것이 기획자, 곧 문화예술교육사의 업무인 줄 알았다.

 

<3회차 스토리텔링 벽화: 하루 한 컷 내 마음>

그렇게 아이들에게 양천구 아티스트:양티스트가 되어 색깔없는 우리동네에 색을 칠하고, 동네 곳곳의 문제점을 찾아 예술적인 방식으로 그것들을 고쳐보고자 하는 그럴사(?)한 컨텐츠를 기획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마치 예술이 주는 위대한 모험과 신비로운 체험들로 아이들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 어떤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화려한 교보재 구성과 어디에서도 보지못한 스토리, 환경과 지역에 대한 메시지까지 녹여낸 글로만 보면 거의 지구를 구할 것만 같은 기획이었다.

헬륨가스를 넣은 풍선처럼 붕 뜬 기획서를 가지고 본 사업에서 필수로 진행되어야 하는 자문회의를 진행했고, 평소 모시고 싶었던 자문위원 앞에서 내 기획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이 프로그램을 왜 기획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음을 느꼈다. “색깔이 없는 게 나쁜 거예요?”라는 질문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 나는 이 지역에 색깔이 없으니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살고 있는 동네를 색칠해보라며 은근히 문제의식 삼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기획서를 모두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왜?”, “굳이?”를 붙여가며, “이 활동을 내 조카가 한다면 재밌어할까?”생각하며. 지역예술가도 찾아보고, 예술교육으로 이름 좀 날리고 계신 선생님의 자문도 구했다. 무식이 용기라고 “이 컨텐츠 같이 하실래요?“같은 질문도 던졌다. 돌아오는 건 계속 No!였다. 기획은 좋은데, 재밌어 보이는데. 그래도 No!였다.(이제와 생각해보건대 계속 거절 당하다보면 마음에 튼튼한 근육이 생기는 것 같다. 쿨하게 거절당하는 상황도 현장 역량강화의 일부가 아닌가 싶다.)여러 가지 이유들 중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예산의 부분인데, 연구개발비가 책정이 되어 있지 않아 말 그대로 시간당 수업료만 받고 내 기획을 디테일하게 풀어내 실행까지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열정을 놓지 않고 여러 TA들과의 컨텍을 시도하던 중, 문득 인스타그램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날 산타 만들기 키트를 제작해 아이들이 무료로 가져갈 수 있도록 지하철역 한복판에 두고 온 분의 포스팅을 봤던 기억이 났고, 이 분은 분명 아이들을 좋아하는 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작정 연락처를 알아내 연락을 드렸는데.. 웬 걸, 이 분이 양천구 주민이었던 것이다. 맘속으로 할렐루야를 외치고 첫미팅 날짜를 잡았고, 우리동네 양티스트 라는 나의 기획에 부제목으로 작고 당당한 이야기꾼, 작당꾼이라는 귀여운 날개까지 달아주시면서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우리동네 양티스트:작당꾼>은 내가 사는 곳의 일상적인 요소들을 예술적인 경험으로 감각하고 그 감각의 경험으로 삶의 환경 속 주체인 ‘나’를 탐구하는 예술체험형 프로그램이며 초등1, 2, 3학년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었던 소재들(주변의 소리, 색깔과 물건 등)이 재료가 되어 기존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전환하고, 상상하고 합력하여 완성된 이야기를 통해 뜻밖의 예술을 경험하면서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에너지를 갖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동네 양티스트>포스터

<우리동네 양티스트:작당꾼>1기 프로그램을 마치고 2기를 준비 중이다. 이 시점에서 내가 본 사업을 통해 가장 크게 체감하고 있는 점이 있다면, TA와 문화예술교육사 혹은 기획자(매개자)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행정가와 예술강사는 분명히 다른 위치에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해야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업무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적어도 재단 업무의 관점에서는 말이다.

 

<1회차 줌: 몬스터가 나타났다>

또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업무를 미리 보고 계획할 줄 아는 역량이 조금은 향상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mbti 마지막 자리는 P. 퍼센트로 뜨는 결과지를 보면 헛웃음이 날정도로 극P에 속한다. 과하게 즉흥적인 성향이 업무에 지장을 줄 때가 있어 가끔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가끔 주변인들 중 평소엔 P인데 업무할 땐 J가 된다고 하는 사람이 부럽기도 이해가 안가기도 했는데, 실무에 던져지다 보니 그렇게 미리 몇 달 후를 예측 할 수 있는 감각과 사전에 계획 해두는 섬세함이 없으면 이 일이 무조건 힘들겠구나 새삼 느꼈다. 공연 당일 무용수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혹은 극장의 조명이나 여러 가지 환경 등이 내 맘에 들지 않아서 갑자기 안무 순서를 바꿔버리는 안무자의 자세로는 절대 문화예술교육사, 특히 재단 일을 하기엔 확실한 무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업이 마쳐질 때쯤 다시 mbti검사를 했을 때 J쪽으로 조금이라도 기울어져 있으면 좋겠다고 조금 욕심내본다.

 

<5회차: 수료식 및 참여 전시 활동>

사실 아이들의 재밌어하고 신나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위에 작성한 수업목표니 주제니 하는 것들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이 수업을 통해 일주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만이 머리와 가슴속에 꽉 찬다. 그리고 수업에 지장이 없는지 부족한 재료가 없는지 수업장소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 보면 정작 제일 중요한 일은 화장실 가고 싶어 하는 아이는 없는지, 목마르다고 물 찾는 아이는 없는지 신경 쓰는 것이다. 그렇게 현장에서의 내 주 업무는 강사 선생님 신경 안 쓰시게 아이들 마실 물 떠다놓고, 화장실 참고 있는 아이는 없는지 살피는 것이 되었다. 또한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내가 준비한 간식을 맛있게 먹으며 집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참 기쁜 일이다.(매 주 간식이 궁금하고 기다려진다던 아이도 있을 정도.)

 

아이들이 처음엔 예술을 통해 이만큼 변화되고, 저렇게 변화되고, 예술은 정말 좋은 것이며, 기적 같은 것이고.. 뭐 이런 에피소드를 기대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예술교육에서 유일하게 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기 아이들 부모님께 만족도 설문조사를 받아보니 “아이가 좋아하더라.”, “아이가 원래 또 하고 싶단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닌데 2기에 또 하고 싶단 말을 해서 놀랐다.”등 오히려 이런 반응들에 생각지도 못했던 감동을 받았다. 아, 어떤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만이 예술교육의 가치를 판가름 짓는 것은 아니구나. 참여한 아이가 행복하면 된 거구나.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예술’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어떠한 기술을 연마한다거나 전공수업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주는 행복과 자기존중감을 스스로가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