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록
2022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시각예술단체 내내로(NNR,엔엔알) - ‘3고_삼꼬’ 고민 기록일지
글 _ 정선주
일단 백팩을 단단히 매고 길을 나섰다.
발품을 팔며 교문동 지역의 경로당, 상가, 박물관을 돌았다.
‘모집’이라는 키워드 보다는 ‘참여’를 종용했던 내내로(NNR,엔엔알_이하 내내로)의 활동은 개인이나 시설, 기관을 설득하기 충분했다. 하지만 마스크 너머로 말 걸기(동네주민, 시설담당자)와 건네기(프로그램 포스터, 소개 리플릿)는 SNS홍보에 익숙한 우리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생각해보면 ‘3고_삼꼬’ 프로그램은 모든 것이 고민이고 도전이다. 2016년부터 지속적으로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해온 단체에게 무엇이 고민이고 도전일까 의아할지 모르겠지만, 지역을 물리적 동네로 해석할 필요를 요구받은 뒤 새로운 참여 대상의 범위부터 공통의 관심사를 이끌어내야 하는 지점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기획하고 작동시켜야 했다.
참여대상은 교문동 지역의 65세 이상 엑티브 시니어.
포스터를 건네받은 경로당에서 연락이 왔다. 6월 21일 3시 미팅을 일정을 잡았다.
6월 21일 경로당에서 우리는 한 시간이 넘도록 나로호 발사 생중계를 봤다.
경로당에 촘촘히 모여 앉은 어르신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숨을 죽이며 나로호 재발사의 성공을 지켜봤다. 우리와의 미팅은 성공적인 나로호 발사에 대한 축하 인사로 시작되었다.
이들의 연대는 공동체의 발전이고 성공이며 이에 따른 기다림과 손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 공동체의 기억을 노크하기로 했다.
첫 수업. 테이블 이젤 위에서 드로잉하는 손은 거침이 없었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의 기록 방법은 각자가 경험한 그때의 체온, 습도, 냄새 등이 뒤엉켜 저장된 ‘느낌’을 소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그린 것을 입체화 시키고, 사진을 찍고, 저장하는 일련의 과정은 참여자와 진행 작가들 사이에 라포를 형성하기 충분했다.
귀뚜라미 소리를 표현한 그림
다음 수업에는 동네를 산책하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은 활동이 필요했다. 하지만 다리가 아파 절대 나가실 수 없다고 한다. 대신 지금 있는 분수대가 옛날 당신의 집터였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옆에 계신 어르신은 맞장구를 치신다. 그리고 수업이 이어지는 내내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구체화 되고 서로의 기억이 맞춰지며 우리는 꽤 여럿의 이해관계가 얽힌 교문동의 그때를 듣고 상상할 수 있었다.
그들을 대신해 교문동 일대를 산책하며 소리를 채집했다. 아침에 들리는 소리, 점심 놀이터 소리, 해질녘 귀뚜라미 소리. 유난히 많이 내렸던 빗소리. 눈을 감고 귀를 열고 소리에 집중한 후 표현해 본다. 내 평생 귀뚜라미 소리를 그림으로 그릴 줄 몰랐다는 말씀과 함께 공간 안에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QR코드를 제작 중인 어르신의 모습
작업 과정을 그때그때 인화하여 스크랩북 사진첩에 저장하는 익숙한 행위와 더불어 테블릿을 사용하여 사진, 영상, 사운드를 저장하는 방법을 익히며 요즘의 기록방식을 경험한다. ‘지금은 따라 할 수 있어도 금방 잊을 텐데’라는 걱정에 코로나19로 모두에게 익숙해진 QR코드를 만들었다. 스캔하면 언제든 지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각자의 디지털 사진첩. 제작 방법은 잊어도 기억은 꺼내어 볼 수 있는 요즘의 기록이다. 곧 있을 추석에 가족들에게 자랑할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우리는 여러 장의 QR카드를 제작했다.
외출도 불가했던 지난 3년의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가 겪었던 ‘일상의 멈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들은 동네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였고, 소외와 공포를 지혜롭게 극복해왔음을 확인하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코로나19를 가볍게 소화해버린 그들은 슈퍼자가면역자들인가?^^*
다시 동네 이야기에 집중해보자. 짧은 기간이지만 그들에게서 들은 동네는 결국 사람이었다.
‘박물관이 되어버린 길 건너에는 맛있는 파스타집이 있었다. 사장님이 친절했던 그곳.’
‘아직도 이발소는 그대로 있더라. 그런데 이발사는 없어.’
‘대사관은 한 번 다시 짓다시피 했지. 그래도 쭉 자리를 지키고 있어.’
그리고 동네에 대한 그들의 니즈는 분명했다. 아니, 각각의 니즈는 분명했다.
우리는 각자의 니즈를 점토를 사용해 만들어보았다. 지도를 기반으로 만든 이 동네는 12명의 참여자가 12피스의 지도안에서 자신의 기억과 니즈를 뒤섞어 구축했다. 그들에게 동네는 마치 멋진 미래도시를 보는 듯했고, 우리는 이것을 구체화 시킬 흥미로운 지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2기 수업에서는 그들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동네를 가시화시키는 수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동네에 슬며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산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정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65세 이상 엑티브 시니어가 아닌 엑설런트 시니어을 만나고 있다.
[단체 소개] 내내로(NNR,엔엔알)는 회화, 영상, 일러스트, 설치, 디자인, 도자 등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작가들과 참여하는 커뮤니티로 이루어져 있다. 본 단체는 시각예술이 이끌어내는 문화적 파급효과 중 창의적인 작가의 재능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활동 전반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 자신은 동시대의 담론을 고민하고 순수한 작품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며 실험적 프로젝트와 전시 등의 창작활동에 매진하고자 한다. 이에 더해 작가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창의적 에너지를 시민과 소통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공유하고 그 안에서 형성되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동시대를 시각화하여 기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